홍은예술창작센터에서 금민정의 신작들을 보면서 이 작가가 원래 조각을 전공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단순히 <통곡의 미루나무>에 나무가 쓰이고, <태엽 감는 새_여옥사>와 <다시 못 볼지 모르니까 이렇게 말하죠 굿모닝, 굿애프터눈, 굿이브닝> 과 같은 작품에서 모니터들을 입체적으로 연결하였다는 조형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현대조각보다 로댕이나 부르델 같은 근대의 조각가, 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대리석 속에서 인체를 재현하려 했던 르네상스의 장인들이 연상되었다. 생명이 없는 돌 덩어리 속에서 생명의 온기가 느껴지는 모상을 만들어내려고 했던 부단한 노력들 말이다. ‘숨쉬게 만드는 것’, ‘살이 있는 그 무엇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전시 공간이나 문과 같은 환경이 마치 생물처럼 숨쉬는 환영을 만들었던 이전 작품들에서도 발견되었던 특질이라면, 이번에 그녀가 보여주는 작품들은 고르게 내쉬는 호흡보다 더 강렬한 것, 숨이 턱까지 찬 짐승이 내뱉는 숨, 혹은 날숨과 들숨에 따라 진동하는 근육의 움직임처럼 좀더 진한 생명의 기운을 품고 있다.
과거의 영상 작품들이 장소특정적인 작품일 때조차 전형적인 화이트 큐브들이라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는 무형무취의 공간들을 대상으로 표현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해 문화역서울 284의 RTO에서 퍼포먼스와 함께 발표했던 <숨 쉬는 벽_Abstract Breathing>(2013)에 이어서 구체적인 공간들, 특히 풍부한 역사적인 맥락을 가진 공간들을 소재로 한다. 하나는 지난 여름 레지던시에 참여했던 대만 북쪽의 단수이(Tamsui) 지역에 대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작가가 2년째 입주해있는 홍은예술창작센터 인근에 위치한 서대문 형무소이다. 먼저 단수이는 17세기부터 스페인, 네덜란드 등 서구의 침입을 받았던 역사적인 항구로, 베이징 조약에 따라 영국 영사관을 비롯한 각국의 상관들이 모이면서 19세기 후반 대만 최대의 항구로 번영했던 곳이다. 일본 식민지 시대부터 인근 기룽항으로 무역의 중심이 옮겨가면서, 단수이는 쇠락의 길을 걷다 최근 식민지의 잔재였던 역사적 건물들이 오히려 관광자원이 되어 지금은 관광지로 탈바꿈한 곳이다. <작은 하얀집을 구조하라_대만, 단수이>는 세관원들의 숙소로 현재 이 지역에 남아 있는 유일한 영국식 근대 건축물이다. 한때 ‘Little White House’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으나 문화계 인사들의 반발에 의해 지금은 역사 유적지로 변모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서구 열강(먼저 근대문명을 받아들인 일본을 포함하여)에 의해 문호를 개방해야 했던 아시아의 많은 지역에서 우리는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간직한 많은 건물들을 만날 수 있다. <작은 하얀집을 구조하라_대만, 단수이>는 대만에서 작가가 만난 현지의 안무가 웨이 칭주(Wei Ching-ju)와 함께 건물의 이미지와 그림자를 움직여가며 만들어낸 퍼포먼스와 영상이다. 단수이에 대한 작품들은 정해진 기간 동안 머물면서 외부인의 시선에서 관찰했던 만큼 대상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기저에 깔려 있으며, 완성된 작품에서도 작가는 담담한 관찰자적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 <숨쉬는 문_대만, 단수이>, <숨 그림자, 신념은 감옥이다_대만, 흥마오청 지하감옥> 등에서 대상과의 관조적 거리가 존재한다.
이에 비해 서대문형무소를 소재로 한 일련의 작품들은 대상과의 거리가 가깝고, 작가는 관찰자적 시선이 아니라 그 공간 속에 ‘참여자’로 서 있다. 가장 시선을 끄는 작품은 작가가 안무가 이선아와 촬영한 단연 <역사가 된 세트장을 위한 연출_격벽장>이다. 일제가 한국인 사상범들을 수감시키기 위해 만든 최초의 근대적 감옥인 서대문형무소는 한 곳에서 전체를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파놉티콘 구조를 가진 것이 특징이다. 그 중, 2011년 복원된 격벽장은 부채꼴 모양의 시설 안에 죄수들을 한 명씩 밀어넣고 운동을 하도록 만든 시설이다. 수감되어 무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거나, 극단적인 경우 죽음을 기다리는 것만이 남은 사형수들을 대상으로 ‘관리’라는 명분 하에 운동을 시켰다. 건강한 생명체가 할 수 있는 행위이며, 또한 건강한 생명체가 되기 위해 하는 행위인 운동을 죄수들에게 시키는 일 자체도 아이러니인데,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없게 1인실에 각각 집어 넣고 운동을 시키는 ‘웃픈’ 상황이 벌어졌던 공간이 바로 격벽장인 것이다. 벽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벽을 넘지 못한 채 각자 운동에 집중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작가는 안무가 이선아에게 전달했다. 안무가는 그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격벽장을 찾았고, 그 벽 앞에 서 있었던 사람들, 그 땅 위를 밟고 뛰었던 사람들을 상상하고 느껴보려 했다. 또한 수감자들의 운동이라는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안무를 만들어냈다. 한 사람은 자신의 몸을 매체로 하여 뛰고 걷고 느꼈으며, 다른 한 사람은 영상으로 그 장면을 담고 편집했다. 완성된 결과물에는 그 공간에 대한 부연설명이 없지만, 독특한 공간의 구조와 그 공간을 누비는 안무가의 동작에 의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르는 벽과 벽 너머를 소망했을 사람의 안타까운 감정이 전달되어 온다. 두 사람 모두 죄를 짓지 않았으면서도 죄인이 되었을 수많은 사람들, 설사 죄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이기에 꿈꾸고 소망했을 것들을 포기해야 했을 과거의 사람들을 향해 말을 걸고, 그들의 이야기를 끌어낸다. 너무나 말끔하게 복원되어 끔찍했던 흔적조차 이제는 사라져버린 듯한 공간에서. <작은 하얀집을 구조하라_대만, 단수이>와 <역사가 된 세트장을 위한 연출_격벽장> 두 작품에서 인상적인 것은 작가가 타 장르의 예술가와 협업을 진행한 방식이다. 여기서 작가는 전체 작품을 진행하는 감독이면서도, 안무가가 공동의 창작자로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적절히 조성해준다. 성공적인 대화를 위해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많이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하려는 말을 잘 들어주고 말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듯, 성공적인 협업이 예술가와 예술가의 대화가 되려면 공동의 창작자가 표현하려는 것에 귀 기울이고, 표현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금민정은 이 지점에서 자신의 참여를 제한함으로써 오히려 협업자가 공동의 프로젝트에 더 기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나간 셈이다. 앞으로 안무가 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의 협업도 어떻게 진행될지 기대된다.
모니터와 모니터를 연결하는 조형적 실험을 시도한 <태엽 감는 새_여옥사>, <다시 못 볼지 모르니까 이렇게 말하죠 굿모닝, 굿애프터눈, 굿이브닝>의 경우에는 아직 작가 자신도 말했듯이 어쩌면 기술적인 발전이 좀더 이루어진다면 조형적으로 좀더 작가의 의도에 가까운 결과물이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모니터와 모니터가 용접에 의해 결합된 하드웨어의 인상이 강해서, 서로 다른 시대를 가로지르거나 시간이 혼재되는 상황에 몰입하기가 오히려 어렵게 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 공간을 영상이 만들어내는 환영으로, 비물질성의 극단에서 공간의 숨을 이야기하던 작가가, 손에 만져지는 것들(어쩌면 손으로 만질 수 없게 될 뻔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무 둥치와 모니터들처럼 시각과 촉각을 모두 자극하는 오브제들을 이용하는 것이 이상하게 반갑다. 50년 전, 영상 매체가 전통 예술의 ‘물질성’을 벗어나 ‘비물질성’의 매력으로 예술가들을 유인했다면, 금민정은 비물질적이고 추상적인 세계에서 거꾸로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사물들과 공간의 세계로 향해갔다. 살아 있는 것들을 향해, 더 뜨겁게 살아 있는 것들을 향해서.
이수정(큐레이터, 국립현대미술관)
It suddenly occurred to me that Guem MinJeong majored in sculpture when I was looking at her latest works at SFAC Art Space Hongeun. This is not simply because wood was used in Wailing Tree and monitors were connected in a three-dimensional, formative fashion in her works, including In case I don't see you, good morning, good afternoon and good evening and The Wind-up Bird Chronicle_Prison for Women. This is reminiscent of modern sculptors like Auguste Rodin and Antoine Bourdelle, rather than contemporary sculptors, and even goes further back to artisans in the Renaissance period who tried to reproduce human body with marble. That is, the endless endeavor to turn lifeless stone into a statue with the warmth of life. ‘Instilling breath’ and ‘making it look like something with flesh’ go hand in hand with her previous works, in which she converted environments such as an exhibition space or door into life form with her characteristic style. Meanwhile, her works this time evoke more powerful energy of life, like panting for breath, animals out of breath or vibration on muscles from inhalation and exhalation.
Even when her previous video works were site-specific, Guem worked on the formless, dull spaces of typical white cubes in which it is hard to tell where you are. However, in this exhibition she has selected more specific spaces, particularly intense in the historical context, following <Breathing Wall _Abstract Breathing(2013)> along with the performance at the Culture Station Seoul 284 and RTO Performance Hall last year. One is Tamsui District in northern Taiwan where she participated in the residence program this summer. The other is Seodaemun Prison in the neighborhood of SFAC Art Space Hongeun where she has been staying and working for two years. First, Tamsui is a historic port which had been invaded by Western nations such as Spain and the Netherlands from the 17th century. Then the district prospered and became Taiwan's largest port in the late 19th century as diplomatic missions from many nations, including the British Consulate, gathered following the Treaty of Peking. Tamsui went downhill as the nearby Keelung port became the hub of trade under the Japanese rule. However, nowadays the district has transformed to a tourist attraction as historic constructions, the vestiges of the colonial rule, has turned into tourism assets.
Rescue the Little White House_Tamsui, Taiwan is the customs officer's residence and the only British-style modern construction left in this district. The 'Little White House' was at the brink of being torn down once, but has now become a historic site thanks to the protest by elite cultural circles. Ironically, we can easily come across the buildings with such a story in many parts of Asia (including Japan that opened its door to western civilization first) that had to open up to the outside world by Western powers. Rescue the Little White House_Tamsui, Taiwan is a performance and video work, which was created based on the movement of the images and shadows of the building in collaboration with a local choreographer, Wei Ching-ju, who she met in Taiwan. Her works on Tamsui are based on intellectual curiosity about the subject matter as she observed it from an outsider's perspective while staying for a certain period of time, and the artist maintains a composed observer's view even in the completed works. In Breathing Door_Tamsui, Taiwan and The Shadow of Breath, Convictions are Prison_Port San Domingo, Dungeon, Taiwan, there is a meditative distance from the object.
In comparison, her series of works on Seodaemun Prison have a closer distance from the object and the artist stands in the space as a ‘participant,’ instead of an observer. The most eye-catching work is Prisoners’ Exercise Area with Separation Walls_Directed for a filming location that became history which was filmed in collaboration with the choreographer Sun-A Lee. Seodaemun Prison, the first modern correctional facilities in Korea that the Japanese built to confine Korean political prisoners, features the Panopticon structure that enables to monitor the entire area efficiently from one spot. In the prison, the fan-shape facility is to put the prisoners into each compartment for exercise, which was restored in 2011. Inmates who spend their days hopelessly or even on death row in extreme cases were put into exercise under the name of ‘management.’ Exercise is an activity that healthy people do or people do for health in general, but it is ironic to make the prisoners work out. Moreover, putting them into their own compartment for exercise is ridiculous. Guem told Lee about the ironic situation in which the inmates have to focus on exercise without overcoming the walls despite their knowledge that there are others over the walls. Lee paid a visit to the exercise area with separation walls based on such information, and tried to imagine the inmates standing in front of the walls and walking and jumping on the ground. Then Lee created a dance after giving a thought to the situation of the prisoners working out. One artist jumped, walked and experienced with her own body as a medium, while the other videotaped the scene and edited it. No comments were added about the space in the final result, but misery of the inmates wishing to climb over the walls that separate them can be felt through the unique structure of the space and the choreographer’s movement there. The two artists speak to the people in the past who may have been in confinement and given up their dreams and hopes whether they did not commit crime or they did, and then unfold their stories. In the space where even the horrible traces have all gone after the entire restoration work, the most impressive thing in Rescue the Little White House_Tamsui, Taiwan and Prisoners’ Exercise Area with Separation Walls_Directed for a filming location that became history is the artist’s style in collaboration with another artist in a different genre. The artist plays as a director of the entire work and creates an environment in which the choreographer can take part as a co-creator. To achieve effective communication, it is helpful to listen to others carefully and let them speak, rather than conveying too many messages of what you would like to say. Likewise, to achieve successful collaboration, it is essential to listen to what the co-creator would like to express for communication between the artists, and create an environment to that end. By limiting her own engagement at this point, Guem let the collaborator further contribute to the joint project. In this regard, I look forward to seeing how Guem will do collaboration work with others in different areas, as well as the choreographer, in the future.
In her works of Wind-up Bird Chronicle_Prison for Women and In case I don't see you, good morning, good afternoon and good evening in which she conducted a formative experiment by connecting monitors, I expect that further technological development in the future would enable Guem to produce a result that better reflects her intention from a formative perspective, as she also mentioned. The strong impression appearing as hardware of monitors welded together may make it difficult to concentrate on the situation of crossing different eras or coexistence of the times. Nonetheless, it is strangely pleasing that Guem, who used to talk about the breath of the space from the extreme of immateriality by filing the space with illusory images of video, now turns to talking about tangible things (which could have been intangible) and using objects that evoke the senses of vision and tactile stimulation, like tree trunks and monitors. Media attracted artists with the charm of ‘immateriality’ half a century ago in contrast to ‘materiality’ of traditional art, while Guem has pursued a world of material and concrete objects and spaces, in the opposite direction of an immaterial and abstract world. Towards the living things, particularly with warmth in them.
Soojung Yi (Curator,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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