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김성하





개체 이전의 물질적 공간과 개체의 관계 - ‘공간성에 시간성을 입히다’  


지속적으로 특정-공간에 대한 성찰을 통해 작품을 구성해 온 금민정의 작업들은 자신을 인식하는 과정을 넘어 공간에 대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을 의미한다. 개체가 존재하기 이전의 물리적 공간과 한 개체의 마주침은 하나의 사건이다. 하나의 사건으로서 특정-공간을 마주한 작가는 자신의 가능한 모든 감각적 차원들을 동원하여 공간의 감춰진 시간의 층위들을 들어내고자 한다. 그것은 한 개체가 낯선 물리적 공간을 맞닥뜨려 개체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고, 이해한다는 것은 자기인식을 넘어 개체가 자기를 실현하는 잠재성의 선결조건이다. 이제 물리적 공간은 금민정의 감각적 차원들을 통과하여 새로운 시간성으로 창조된다. 


금민정의 작업은 개체가 물질적 공간과 맺는 관계에 대한 것으로 개체의 ‘살아있음’에 관한 것이다. 즉 개체의 살아있음 자체를 개체가 매순간 점유하는 공간을 통해 각인하는 작업으로 현행적인 창조성이다. 다시 말해 공간성에 시간성을 주입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개체, 모든 살아있는 생명의 본성이자 자신의 존재를 실현하고자 하는 지난하고 치열한 자신의 펼침이다. 그것은 ‘생성으로서의 시간성’, 생명의 본성을 의미한다.  


금민정의 작업은 이러한 지점을 집요하게 묵도하고 공명하고자 한다. 일면 단정해 보이는 작업의 형식적 측면 안에서의 떨림, 지난하고도 치열한 떨림이 자신을 둘러싼 특정 공간에 균열을 가하고, 그 틈에 기생하듯 자신의 몸을 쑤셔 넣어 비집고 들어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한다. 기존의 영상작업들에서 종종 보이는 특정-공간에 자신의 숨을 불어넣는 ‘숨쉬기’의 행위 그리고 흔적들을 통해 자신의 살아있음을 인식하는 ‘심장소리’로의 확장은 이러한 맥락에 놓여있다. 나아가 특정-공간에 전문안무가와의 협업을 통한 퍼포먼스의 도입은 자아를 넘어 타자로 확장된 시간성을 도입하여 새로운 관계들을 생성시키는 것 또한 이러한 지점에서 조우한다.


문화비축기지 탱크4(T4)에서 진행되는 《경관 미디어전》 <다시 흐르는>은 금민정의 이전 작업들과 유사하게 40여 년간 석유탱크로 활용되다 공공의 장소로 재생한 탱크의 공간성을 성찰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공간은 작가와의 마주침을 통해 세 개의 각기 다른 형태의 스크린이 T4의 내부와 외부의 공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하는 영상이미지와 사운드가 결합한 미디어 작품으로 설치된다. <다시 흐르는>은 단순히 탱크 내부의 국한된 공간에 대한 것이 아니라 탱크 내부와 외부 공간의 전이와 결합, 혼재의 배치를 통해 공간을 전복시키고, 더불어 이미지와 사운드에 의해 공간에 축적된 시간성을 전복시킴으로써 새로운 다양한 관계를 파생시키고 있다. 그것은 공간의 축적된 시간성과 그곳을 마주한 작가에 의해 매순간 새롭게 생성되는 현행적 시간성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공간과 시간의 전복에 의한 다양한 관계를 생산함으로써 ‘공간성에서 시간성으로의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우선, ‘직사각형의 대형 레어-스크린’은 탱크 외부의 매봉산의 암반과 그 단층 그리고 탱크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인공의 콘크리트 벽면의 영상이미지를 통해 ‘탱크 외부를 탱크 내부공간으로 전이’시키고 있다. 동시에 이 공간의 시간의 흐름을 콜라주한 영상이미지와 사운드-탱크 내부에서 오일 떨어지는 소리, 탱크 내부를 지탱하는 기둥의 움직임 소리, 그리고 그 기둥을 두드리는 소리, 매봉산의 바람소리 등-의 비선형적인 결합은 공간의 축적된 시간의 흐름을 현재로 가져와 새로운 시간성을 생산한다. 이어서 ‘탱크 내부의 기둥(제작된)과 결합된 스크린’은 탱크 외부의 암벽 지층의 단면을 영상이미지로 투사함으로써 ‘탱크 외부를 탱크 내부 공간과 결합’시키고 있다. 실제 기둥과 결합된 또 다른 백색의 스크린은 현시간성의 빛을 비유하는 것으로 잘린 기둥의 영상이미지와 동시에 공존함으로써 시간성을 전복시킨다. 마지막으로, ‘탱크 내부의 콘크리트 벽면 스크린’은 탱크 외부의 나무와 내부 콘크리트 벽면의 빛과 그림자가 혼재된 영상이미지를 시각화하여 ‘탱크 외부와 탱크 내부 공간의 혼재’를 보여준다. 동시에 탱크를 둘러싼 외부와 내부의 혼재된 공간성에 빛과 그림자의 실시간 움직임을 통해 새로운 시간성을 발생시킨다. 


더불어, 탱크 내부의 다섯 개의 기둥과 결합된 목소리-실제 이 공간을 경험한 사람들의 인터뷰 일부-사운드 설치작업은 마치 과거에 탱크를 경험한 개체들의 시간의 지층을 통과한 무형의 현존들처럼 기둥사이를 휘감아 돌아치는 새로운 언어적 감각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 결국 <다시 흐르는>의 스크린의 설치방식, 영상이미지, 사운드의 비선형적인 방식에 의한 비정합적인 관계의 생산은 기존의 공간성을 비틀고 변형시켜 이를 통해 다양한 감각과 감성을 산출함으로써 공간을 새로운 시간성의 차원으로 이끈다.

금민정은 영상매체를 가상의 환영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생산하는 매개체로 바라본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자기표현의 기계적 생산성을 의미한다. 금민정에게 영상매체는 자신을 통과한 영상이미지의 주체적 생산을 매개하는 일종의 플랫폼 역할을 한다. 영상이미지는 작가 자신이다. 영상이미지들은 작가 자신이 이 공간과 맺고 있는 관계의 연속들이다. 이것은 공간에 침투하여 전이, 결합, 혼재, 연접, 이접 등의 다양한 관계를 생산함으로써 새로운 감각과 감성들을 발생시키고 있는 금민정의 행위들이다. 


여기서 관계의 생산이란 단지 작가 개인의 감각적인 경험만이 아니라 공간의 감각적 경험들을 포괄하는 것으로 물리적 공간을 넘어 축적된 공간의 시간성과 금민정의 시간성의 관계 맺음을 의미한다. 금민정의 작업은 개체가 등장하기 이전의 낯선 물리적 공간을 대면하여 새로운 관계들을 생산하는 메커니즘을 시각화하여 보여줌으로써 공간성에 시간성을 입히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작가 자신의 창조적인 본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지만 근원적으로 생성으로서의 모든 생명의 존재론적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작가의 직관적 인식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T4의 공간에 각인된 작가 자신의 작업 <다시 흐르는>은 작가 자신의 존재 각인을 넘어 자유를 향한 본성의 적극적인 펼침이다. 뿐만 아니라 금민정 작업은 개체 이전의 물리적 공간과 관계 맺으며 살아내고 있는 치열한 개체를 근원적으로 직시하게 한다.

 

김성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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